W/DC

[뱃가] Blue Nocturne , Day 2

ixxrax 2016. 9. 26. 16:06

※ 띄엄띄엄 올려질 일상물입니다. All Copyright ⓒ Songmme ※




Blue Nocturne , Day 2



  "...뭐하는 짓이냐."

  "눈을 뽑아버리려다 누나 봐서 참는 거니까 닥치고 꺼져."

  "이 빌어먹을 땅콩같은...! 땅콩같은......"


  눈을 향해 치약을 뿌려대는 데미안의 머리통을 큰 손바닥으로 짓누른 제이슨은 제 눈을 의심했다. 챙이 넓은 모자를 들고 나오는 카산드라의 차림이 낯설었다. 아무때나 스스럼없이 노출을 감행하긴 했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하얀 꽃덩쿨이 그려진 하늘색 프릴 비키니 위에 부드러운 린넨으로 된 셔츠를 걸친 모습에 제이슨은 이를 악물었다. 늘 예쁘다 예쁘다 생각하긴 했지만 오늘은......


  "누가 이런거 입으래?! 남들한테 제가 이렇게 사랑스럽고 큐티해요~ 하고 자랑하냐?!!"

  "...제이슨."

  "왜!!"

  "사랑스럽게 봐줘서 고마워."


  제이슨의 붉어진 얼굴을 가소롭단듯 노려보던 데미안은 저를 짓누른 손에서 힘이 빠진 틈을 타 남은 치약을 마저 짜냈다. 아악! 이 재수없는 꼬맹이가!! 호텔 복도가 떠나가라 난동을 피우는 두 사람과, 그들을 담담하게 지켜보는 카산드라의 등 뒤로는 너른 해변이 펼쳐져있었다. 색색의 옷을 걸친 사람들이 알록달록한 점묘화처럼 보일 정도의 높은 층에 숙소를 잡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밤이면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열대나무에 조명이 걸리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모양이 초승달을 닮아서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많은 소원을 빈다는 리뷰를 봤기 때문이었다.

  카산드라와 둘만의 여행을 떠나오려했던 계획이 데미안 탓에 엉망이 되긴 했지만, 둘이 함께 있을 시간이 설마 단 삼십분이라도 없을까 싶은 맘에 참고있던 제이슨이었다.


  "너희들은 옷 안갈아입어?"

  "망할 토드 놈이 수영복 따위를 챙겨왔을리가 없지."

  "허! 쪼끄만한게 희미한 복근 좀 드러낸다고 뭐 달라질 줄 아나?"

  "날 무시한 치욕을 반드시 갚게 해줄거야, 제이슨 토드."

  "오냐, 꼭 그래라. 이 몸은 사람들 심정지 막아주려고 이대로 나갈란다."

  "흥. 자신이 없는거겠지. 네 놈이 요즘 운동 게을리한걸 내가 모를 줄 알아?"

  "두고보자, 빌어먹을 웨인 꼬맹아...삼십분 뒤에 로비에서 보자고."

  "좋아. 힘껏 꾸며보라고, 어디."


  카산드라는 저 혼자만 남겨두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버린 두 사람의 잔향을 쫓다 픽, 웃어버렸다. 제이슨에겐 미안하지만, 모두가 함께 있는 편이 즐거웠다. 울컥하는 다른 어떤 감정을 배제하고는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 전부가 곁에 있어주는게, 카산드라는 행복했다.


  "...좋아."


  좋다는 귀한 말을, 곧잘 내뱉을 수 있게 되어서, 좋아.


***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제이슨과 데미안은 얼굴을 가리고 걷느라 계속 서로에게 부딪혔다. 제이슨의 허리께에 얼굴을 맞고 넘어진 데미안이 거친 욕을 내뱉으며 일어서자마자 제이슨이 그를 끌고 해변으로 달려나갔다. 푸드 트럭 앞에 선 카산드라의 주위로 열댓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 서서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


  "야, 지금 우리 꼴이 이런데 저기로 뛰어들자는 거야?!"

  "감히 캐스를 둘러싸고 웃어? 다 보내버리자고, 꼬맹이."

  "너까짓게 아니어도 누나가 싫으면 알아서 처리할거라고!"

  "닥쳐, 꼬맹이. 따라오기 싫음 여기 있어."


  당당하게 어깨를 펴들고 걷는 제이슨의 뒷모습을 망연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데미안은 곧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팔짱을 꼈다. 요란한 무늬와 컬러의 하와이안 셔츠, 뻔뻔한 블랙 스윔팬츠, 돌조각과 조개껍질을 엮은 팔찌로도 모자라 꽃을 연결한 화관까지 하고도 카산드라에게 다가가는 용기가 가상하기도 했고, 웃기기도 했다.


  "데미? ...이 추잡스런 금목걸이는 뭐야?"

  "..."

  "얘 봐, 딕. 머리도 올렸어."

  "..."

  "배에 지금 음영 넣은거야? 네가 수영하기 시작하면 바닷물이 새카매지겠는걸!"

  "..."

  "개목걸이가 따로 없네. 데미안이 아니라 티투스가 따라왔나."


  제 꼴도 추잡스럽긴 했지만.


***


  "혼자 왔어, 키티?"

  "둘이 왔다, 왜."

  "...어머, 이 흉측한 덩어리는 뭐지?"

  "누구더러 덩어리래!!"

  "너. 말 섞기 싫은 몰골이야. 다음에 또 봐, 키티!"


  금발머리를 양갈래로 나눠 묶은 늘씬한 언니를 막아서며 제 뒤로 카산드라를 숨긴 제이슨은 '흉측한 덩어리'라는 말에 제 모습을 내려다보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머스타드가 잔뜩 뿌려진 핫도그 두개를 한 손에 들고있던 카산드라는 제이슨의 팔을 쿡쿡 찔렀다. 그녀 곁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제이슨의 요란한 꼬락서니에 흥미를 잃고 흩어졌다.

  카산드라는 핫도그 하나를 제이슨에게 내밀고는 그의 머리에 얹힌 화관을 뺏어 제 목에 걸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앞서 걷기 시작하는 그녀를 헤벌레, 웃으며 바라보던 제이슨을 누군가 불렀다.


  "계산해주셔야죠."

  "뭐요?"

  "핫도그 두 개. 계산 안하셨는데."


  푸드트럭의 주인이 손바닥을 내밀자 제이슨의 동공이 흔들린다. 카산드라를 홱 돌아본 그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는 그녀를 원망하며 지갑을 꺼냈다.


***


  "팔찌도 할래?"

  "응."

  "...예쁘네."


  카산드라는 물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기고는 제이슨에게서 팔찌를 받아들었다. 햇빛에 투명하게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를 가만 바라보던 제이슨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작은 턱을 쥐었다.


  "행복해?"

  "...응."

  "앞으로도 행복하게 해줄게. 약속한다, 캐스."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소리와 어린아이들의 고성이 먹먹하게 멀어져간다. 점점 가까워지는 달큰한 체향에 카산드라도, 제이슨도 살며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차가운 뭔가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느낌에 번쩍 눈을 뜬 제이슨은 주먹을 쥐었다. 팀과 데미안이 빨간 바스켓을 들고 키들거리는게 보이고, 기시감이 느껴진다. 셔츠 뒤로 들어간 얼음을 빼낼 생각도 않고, 그저 하하, 같이 웃어버린다.

  눈 앞에서 카산드라가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아서. 데자뷰처럼 보이는 웃는 얼굴이, 또 좋아서.


***


  "감히 누나랑 키스를 시도해? 머리 검은 짐승을 거두지 말랬거늘, 아버지는 어째서......아버지!?"

  "와우, 브루스...역시 화끈하게 놀 줄 아신다니까."

  "양 옆에 누워있는 저 여자들은 브루스가 브루스인지 알까?"

  "아버지가 감히......감히 나를 두고......"

  "데미, 진정해. 네게 어울리는 파트너 찾는걸 도와줄게."

  "저기 있네. 유치원생 쯤으로 보이는 작은 아가씨 어때?"

  "다 부숴버릴거야."

  "데미, 그건 내려놓는게 좋을 것 같은데!!!"

  "딕, 튀어!!!"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