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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캐스뎀] Breathe Again

ixxrax 2016. 8. 10. 02:43

※ 제목은 세라 바렐리스의 곡에서 따왔습니다. 비욘세의 Broken-Hearted Girl을 들으며 썼습니다. 이 글을 무단 수정, 공유 및 배포할 경우 법적 책임 묻습니다. 저작권은 저와 소재를 기꺼이 내어주신 분께 있습니다. ※

 

 

 

Breathe Again

 

- 제이슨 토드 X 카산드라 케인 X 데미안 웨인

 

 

  "카산드라!"

 

  뒤집어쓰고있던 붉은 후드를 거칠게 잡아빼내 던지는 제이슨의 얼굴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로 머리칼이 잔뜩 달라붙어있었다. 저택의 문이 천천히 닫히자, 칙칙한 어둠을 비집고 수십개의 창을 통해 미미한 햇빛이 들이닥친다. 당장이라도 돌아버릴 것 같은 눈을 하고 카산드라를 찾는 제 형제를 2층 난간에 기대 서서 바라보던 딕이 그를 불렀다.

 

  "뒤뜰에 있어."

 

  말이 끝나자마자 제이슨은 달려나갔다. 격자무늬의 넓은 홀에 덩그러니 버려진 레드후드를 응시하던 딕은 눈을 감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브루스가 돌아오고, 곧이어 캐스가 돌아왔다. 그들이 없는 사이 데미안은 '평범하게' 살고싶다며 아파트를 구해 나갔고, 제이슨은 단 한번도 저택에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딕과 팀은 그들이 머물던 방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유독 지치는 날엔 그들의 방에 차례로 머물렀다. 오랜 외로움에 지쳐있던 팀은 카산드라가 돌아왔다며 들떴지만, 딕은 달랐다. 그의 외로움을 이런 식으로 해소할 생각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세 사람은 가족일 수 없다는 것을 딕은 알고 있었다.

 

  '데미, 캐스 일은...이미 제이도,'

  '차라리 잘됐어.'

  '...뭐?'

  '두 사람이 헤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이것 뿐이었네.'

  '데미안.'

  '형이 화내도 어쩔 수 없어. 내 기쁨은 아버지의 죽음과는 별개야. 내 손으로 캐시의 웨딩드레스를 찢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브루스가 돌아온 후로 데미안은 반쯤 미쳐있었다. 카산드라가 돌아오면 어떡하냐, 제이슨을 죽여버리고 싶어 미치겠다는 등의 말을 두서없이 지껄이다 제 뺨을 후려치며 웃기도 했다. ...그는 더 이상 어린 소년이 아니었다. '캐시는 내꺼야.', '꿈도 꾸지마, 제이슨 토드.' '흥, 멍청한 토드놈.' 대책없이 날이 바뀌는 동안 데미안은 어느새 남자가 되었고, 치기 어린 질투로 투닥거리기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제이슨 역시 마찬가지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의 아픔과 상처는 데미안의 것과는 달랐고, 같은 아픔을 겪지 못한 두 사람은 당연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었다.

 

  "가족의 틀을 깨어버렸다 해서 이기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세 분은 나름대로의 성장통을 겪는 중이고...때로 어떤 이는 평생을 거쳐 어른이 되기도 합니다."

  "알프레드, 난 더 이상 우리 가족이 망가지는 걸 두고 볼 엄두가 나지 않아요..."

  "오래 앓는다고해서 모두가 더 완벽하게 다듬어지지는 않지만, 제가 보기엔 다릅니다. 데미안 도련님과 제이슨 도련님, 그리고 캐스 아가씨에게는 아픔을 이겨낼 힘이 있어요."

  "..."

  "고담에서 오래 살다보면, 특히 이 음침한 저택에 오래 살았던 저 같은 늙은이에게는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 있습니다. 절 믿고 지켜보세요. 진통에 무뎌지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복면을 주워든 알프레드는 소탈하게 웃으며 딕을 올려다보았다. 잘 비추지도 않는 햇빛을 구름이 가렸던 틈을 타, 알프레드는 홀을 떠나고 없었다. 잠시 머물던 딕 역시 짙은 한숨만 잔뜩 남기고 자리를 떴다. 애초에 아무도 없었던 듯, 저택은 곧 텅 비어버렸다.

 

***

 

  "...캐스."

 

  떠나지마. 돌아와. 제발. 난 아직 여기에 있어. 입속말로 매일을 뇌이던 말들 속에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그녀를 잊기 위한 제이슨 나름의 노력이었다. 널 다시 만나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 노력임을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죽도록 애썼어. 근데 넌...? 너는...네 맘대로 나를 버리고 다시 취해도, 나는...내 모든 노력을 한순간에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너를, 빌어먹을...두서없이 솟아오르는 생각들 틈으로 단 한가지 마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람에 휘어지는 갈대밭 새에 위태롭게 선 그녀를 본 순간, 제이스는 충동을 느꼈다. 달려가 그녀를 안아, 제이슨.

 

  "돌아와줘서...흐, 흡...돌아와줘서 고맙다...하아..."

  "..."

  "제길...정말...하, 캐스...돌아와줘서 고마워..."

  "..."

  "...다시는 놓치지 않아."

 

  그리고 말해, 제이슨. 다시는 놓지 않겠다고. 카산드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꼭 안은 제이슨은 제 등에 느껴지는 작고 익숙한 온기에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신이 있다면, 그 빌어먹을 양반이 아직 건재하다면, 자신과 카산드라의 사이를 또 갈라놓으려한다면, 신의 목숨을 거두어서라도 그녀를 놓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

 

  "다시 숨을 쉬는 기분이 들어."

 

  제이슨의 니트를 걸친 채로 창가에 앉아있던 카산드라는 그가 건네는 머그잔을 받아들며 희미한 웃음을 보였다. 어쩌면 나도. 차마 입 밖으로 소리내 말하지는 못하고 고개만을 끄덕인 카산드라는 불현듯 불길한 기분이 들어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누군가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왜 그래?"

  "...제이."

  "네가 무슨 말하려는진 알아. 브루스의 저택에서 지내는게 편하다면 그렇게 해. 나도 널 이리로 당장 데려올 생각은 없어."

  "..."

  "그냥...며칠만 여기 함께 있어줘."

 

  그녀의 검은 머리칼을 빗어내리듯, 큰 손으로 쓰다듬던 제이슨은 그대로 힘을 주어 카산드라의 얼굴을 제쪽으로 끌어당겼다. 작고 동그란 이마에 닿았던 뜨거운 입김은 눈꺼풀 위와 콧잔등 위를 지나 붉게 물든 뺨을 거쳐 부드러운 입술 위로 가 닿았다.

 

  "사랑해."

 

  제이슨의 조심스러운 손길을 느끼며 카산드라는 눈을 감았다. 데미안 얘기를 꺼내는건 이르다는데에 생각이 미쳤다. 불안과 안도가 한데 뒤섞인 상태의 제이슨을 보듬어주는데에만 집중하고싶기도 했다.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겐 이기적이고,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행동을 했던 지난 날들과 달리 이번엔 그녀 스스로 이기적이고싶다고 생각했다. 행복할 권리가 내게도 있어. 카산드라는 손을 뻗어 제이슨의 목을 끌어당겼다. 어깨를 몇 번 손가락으로 두드리자, 낮게 신음을 뱉은 제이슨이 그녀를 안아들었다.

 

  "사랑해, 캐스."

 

  나도...카산드라는 감았던 눈을 뜨고 포근한 담요의 촉감을 느끼며 창밖을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데미안이 지켜보고있을 것을 알기에 차마 답해줄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제 기다림밖에 없음을, 제이슨에게 돌아온 이상 데미안에게는 해줄 수 있는 어떠한 것도 남아있지 않음을 느꼈다.

 

***

 

  "데미안, 어쩐 일로...그건 뭐야?"

  "팀, 나 좀 도와줘야겠어."

  "멍청한 은행강도라도 토막내온거야? 그건 제이슨 방식인걸."

  "..."

  "...너 설마 정말 사람을 죽인거야?"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데미안의 두 눈을 마주하기가 오싹해진 팀은 이불을 걷어내고 나이트 테이블을 더듬어 스탠드를 켰다. 주홍색 불빛 앞에 선 데미안의 얼굴은 헬쓱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상 행복할 수 없어 보였다.

 

  "아니. 짐을 찾으러 왔어."

  "짐? 네 짐 말하는거야? 웬만한건 전부 네 아파트로 보냈는,"

  "아니. 아직 남았어."

 

  데미안의 곧은 얼굴은 카산드라의 방이 있는 건너편을 향했다. 언제까지고 오만하고 천진할 것 같았던 그의 눈동자에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

 

  "아직 내가 가져가지 못한 게 있어."

 

***

 

  [ 데미안을 돌볼 사람은 오직 너뿐이야. - T ]

 

  제이슨에게 저녁을 만들어줄 요량으로 근처 식료품점에 다녀온 캐스는 입구에서부터 데미안의 체취를 맡았다. 팀의 필체는 맞지만, 메시지가 적힌 쪽지를 두고 간 건 데미안이었다. 그녀를 괴롭히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데미안이었다. 데미안은 어떻게 해야 카산드라가 자신을 만나러 올지 알고있고, 그대로 실행할만큼 그녀를 절실히 원했다. 카산드라는 종이봉투를 다이닝룸 한켠에 내려놓고 펜과 쪽지를 찾아 또박또박 글을 적었다. 곧 돌아올 제이슨이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기를 바라며 몸을 일으켠 카산드라는 망설임없이 밖으로 나섰다.

 

***

 

  "캐시! 날 봐주러 올 줄 알았어...난, 나는 캐시가 내게 오지 않아서...너무...외로웠어."

 

  다짜고짜 그녀를 끌어안은 데미안은 울먹이기 시작했다. 카산드라는 오른손을 들어 데미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몇 년 흐르지 않았지만, 데미안에게는 곱절의 시간이 스쳐간 듯 군데군데 어른스러운 태가 눈에 띄었다. 카산드라를 안았던 팔을 풀고, 그나마 어릴 적 모습이 남아있는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침실로 그녀를 이끌었다.

 

  "누나가 지낼 방이야."

  "...데미안, 난,"

  "누나가 내게 오지 않으면 난 그 자식을 죽일거야."

  "..."

  "아님 날 죽일거야."

 

  부드러운 아이보리 톤의 방 벽에는 가랜드처럼 두 사람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붙박이 옷장의 목재 문에는 두 사람이 함께 그린, '캐스와 데미의 성'이라고 크레파스로 삐뚤삐뚤하게 적힌 제목의 오색찬란한 성 그림이 붙어있었고, 반쯤 열린 문 틈으로는 몇 벌 안되는 카산드라의 옷이 걸려있었다. 카산드라는 주먹을 꼭 쥐며 방으로 들어섰다. 나이트스탠드 아래에는 은박 장식이 된 유리 액자가 있었고, 그 안에는 어린 카산드라와 어린 데미안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욕실에 이미 누나 물건들 가져다놨어. 아버지 집에도, 토드놈 집에도 갈 필요없어."

  "...내가 착각했었어."

  "..."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내 곁에서도 행복할 수 있잖아!!"

  "..."

  "내 곁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해, 캐시!"

  "이러지마, 데미안. 상처주고싶지않,"

 

  카산드라의 얼굴을 거칠게 감싸쥔 데미안은 눈꼬리를 늘어트린 채로 울고있었다. 침대 맡에 앉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눈 앞에서 목격한 사람마냥 망가진 얼굴을 하고선 울고있었다.

 

  "제발...제발, 캐시..."

 

  소리치느라 쉰 목소리에 카산드라는 쥐었던 주먹을 펴고, 어깨를 늘어트렸다. 물리적으로 그를 다치게 할 순 없었다. 제이슨에게 돌아가야하지만, 데미안의 몸에 생채기를 낼 순 없었다.

 

  "말해줘...내 곁에서 나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약속해..."

  "...시간이 지나면, 데미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야."

  "아냐!!! 내가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니잖아!!!!"

  "..."

  "내가 원하는 답을 내놓으란말야!!!!"

 

  네가 언제 이렇게 커서 내 어깨를 한 손에 다 거머쥐는 것일까. 데미안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댄 카산드라는 순식간에 침대 위로 팽개쳐졌다.

 

  "가려면 날 쓰러트리고 가."

  "..."

  "할 수 있잖아."

  "..."

  "내 마음에 이렇게나 많은 상처를 줬으면서...어째서 날 위하는 척하는 거지, 캐시...?"

 

  제이슨의 부드럽고 조심스런 입술과 손이 닿았던 곳을 데미안 역시 지나기 시작했다. 제이슨과는 달리 급하고,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만큼 거칠었다.

 

  "말해, 캐시...사랑한다고 말,해줘..."

  "..."

  "아님 날 넘어트리고, 가버려...위하는 척은 필요없,다구..."

 

  그가 얼마나 그녀를 안고싶어했는지는, 카산드라가 가장 잘 알았다. 착각한 게 하나 더 있어, 카산드라. 데미안에게 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남아있었어. 그가 이렇게나마 나를 취하고 잠시나마 행복해할 수 있다면, 난...근데 이게 데미안을 더 망가뜨리는 길이면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난 이 아이를 밀쳐내야하는건가...? 난 이 아이 곁에 언제까지고 있어줄 수 있는 가족인데...

 

  "내 생각만 해, 누나."

 

  거친 움직임에 카산드라의 찌푸려진 미간을 땀에 젖은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데미안을 숨을 참았다. 눈 앞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카산드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얗고 부드러운 레이스, 흩날리던 눈발 새로 눈부시게 빛나는 검은 눈, 바람에 흩날리던 작은 화관의 리본...쓸쓸한 겨울날의 갈대밭을 온통 황금빛 파도물결로 뒤바꿔놓은 그녀의 미소.

 

  "..."

 

  일순 움직임을 멈추고 카산드라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데미안은 그녀의 여린 몸 위로 무너졌다. 아직 뜨거운 그의 등 위로 얹으려던 손을 허공에 멈춘 카산드라는 하얀 천장에 그려지는 제이슨의 얼굴에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귓가에 제이슨의 웃음소리와 데미안의 울음소리가 겹쳐 울린다.

 

  "그 자식보다 내가 더 좋아했었어..."

  "..."

  "...누나도 알고있었잖아."

 

  카산드라의 검은 머리칼과 작은 어깨가 온통 젖어들도록, 데미안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응. 이번에도 카산드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근처에 제이슨이 와있음을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

 

  "죽이지 그래?"

 

  고담에 이토록 큰 뇌우가 쏟아진 적이 있었나. 터진 입술을 닦아내며 데미안은 다시 일어섰다. 빗속에 어지럽게 흩어진 레몬, 바게트, 아스파라거스 등을 둘러보는 사이 제이슨의 주먹이 이번에는 데미안의 콧등을 뭉갰다.

 

  "힘 뺄 필요없잖아? 그냥 쏴버리고 누나를 데려가, 제이슨 토드."

 

  빗길에 나뒹구는 바람에 흙탕물을 뒤집어쓴 데미안의 얼굴을 직시하며 그의 가슴을 짓밟은 제이슨은 한참 씩씩거리다 담배 한개피를 꺼내물었다. 불 붙이기를 몇번이나 시도하던 그는 말을 듣지 않는 라이터를 거칠게 집어던지고는 담배를 주먹으로 뭉갰다. 얼굴을 쓸어내리고 데미안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운 제이슨은 낮게 욕을 짓씹었다. 카산드라가 남긴 메모 위 정갈한 글씨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 내게 두 사람 다 소중해. 누구라도 다치는 이가 있다면, 난 더 이상 이 곳에 남을 수 없어. - C ] 카산드라와 재회하던 날,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 있다면 신을 죽여서라도 막을 것이라는 그의 다짐은 작은 메모 앞에 무너졌다.

 

  "잘 들어, 데미안 웨인. 언제나 네가 재수없었고, 난 앞으로도 평생 널 저주하며 살아갈거야. 가끔 네 옆구리에 총알을 박아넣거나 다리를 부러뜨릴거라고!"

  "..."

  "하지만 난 널 죽이지 않아."

  "...관대한 척은 여전하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내게 이 세상보다 소중한건 카산드라니까. 네가 죽으면 그녀는..."

  "..."

  "카산드라는 슬퍼할거야. 네가 짐작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

  "그녀를 아프게 할 순 없어. 그게 너와 내 마음의 차이다, 빌어먹을 꼬맹아."

 

  데미안을 거칠게 밀치고 제이슨은 오토바이에 올랐다. 널 몇 대 팬 지금도 난 그녀가 얼마나 마음 아파할지 생각하면, 널 때린 내 손을 잘라내고싶어져. 제이슨이 사라지고 몇번의 천둥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두드려맞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데미안은 걷기 시작했다.

 

  '그녀를 아프게 할 순 없어. 그게 너와 내 마음의 차이다, 빌어먹을 꼬맹아.'

 

  네가 뭔데...네까짓게 뭔데......

 

  '내게 이 세상보다 소중한건 카산드라니까.'

 

  감히...네까짓게......

 

  손등으로 눈가를 거칠게 문지르며 걷던 데미안은 무릎을 꺾고 검은 도로 위에 주저앉았다. 절규하는 그의 등 위로 내려앉는 것은 후회와 절망과 세찬 빗줄기뿐이었다.

 

***

 

  "...이쪽 좀 봐, 데미안."

 

  흠뻑 젖어 덜덜 떠는 데미안을 소파에 앉혀 닦아주고, 담요를 둘러준 카산드라는 구급상자를 챙겨와 어린 동생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이제는 날개뼈 언저리에 머무는, 제법 길어 성숙한 분위기를 뿜는 카산드라의 검은 머리칼 새로 손가락을 얽은 데미안은 제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갖다대었다.

 

  "...누나."

  "...상처부터 치료하고,"

  "내가 누나한테 바라는건 키스도, 섹스도 아냐."

  "..."

  "사랑이야. 뜨겁고, 온전하고, 아마 죽어서도 영원할 그 마음."

  "..."

  "누나가 내게 줄 수 없는 단 하나가 바로 그 사랑이겠지."

 

  한숨을 쉬며 작게 웃은 데미안은 터진 입술 탓에 곧 다시 표정을 찡그렸다. 손을 뻗어 데미안의 뺨에 갖다댄 카산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슨이 날 찾아왔어. 그가 날 이렇게 만든거야."

  "..."

  "마음 아파?"

  "...그럼."

  "하지만 제이슨을 죽이고싶진 않겠지."

  "..."

  "...돌아가, 캐시."

 

  카산드라는 고개를 들고 데미안의 얼굴에서 손을 거뒀다. 고담에 돌아온 이후 처음 보는 데미안의 온순한 표정이었다. 모두의 앞에서 으스대던 어린 시절에도 그는 카산드라와 단 둘이 있을 때면 종종 온순한 표정을 보이곤 했다. 며칠 내내 예민한 몸상태로 카산드라를 안으려 애썼던 낯선 남자가 아니었다. 데미안은 다시 그녀의 소중한 동생으로 돌아가고있다.

 

  "두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지는 않아. 영원히 누나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할 수도 있어. 난...제이슨과는 달라. 누나가 나 아닌 다른 사람 곁에서 행복해하는건 상상할 수도 없어..."

  "..."

  "...내 곁에서 불행해하는 모습 역시 지켜볼 수 없어..."

 

  다 까진 손바닥으로 한쪽 눈을 짓누르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 위로 겨우 웃음을 덮어씌우려는 데미안을 꼭 안은 카산드라는 그의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억지로 참던 울음을 그제서야 터트린 데미안은 물기가 번져 흐린 시야 사이로 짧은 단발을 흩날리며 시계탑 위에 서서 웃던 카산드라를 발견했다.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카산드라의 모습이었다. 그녀 뒤에는 제이슨이 서 있었고, 두 사람은 아무런 터치 없이도 한몸처럼 어울려있었다. 사실 알고있었다. 카산드라의 곁에 설 수 없음을...그 날부터.

 

***

 

  2년 후.

 

  "나의 사랑스러운 캐시 조이에게 우스꽝스러운 핑크 땡땡이 수트를 입힌 작자는 당장 자수해."

 

  또 시작이군. 카산드라는 물방울 무늬의 분홍색 머그잔에 담긴 허브티를 마시며 2층 난간에 기대 섰다. 데미안의 소란에 억지로 잠에서 깬 제이슨이 그녀의 뒤로 다가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또 시작이군."

  "더 자도 되는데."

  "자기가 곁에 없는데 어떻게 저 침대에 더 누워있을 수 있겠어."

 

  제이슨은 능글맞은 투로 카산드라의 귓가 언저리에 속삭이다 그대로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카산드라는 천천히 돌아서서 잔을 들지 않은 손으로 제이슨의 허리를 감았다. 나 간지러워, 허니...잠에 취한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그를 한번에 힘주어 가볍게 들쳐 맨 카산드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뱉었다. 백년이고 천년이고 누워있을 인간.

 

  "어, 굿모닝. 캐스."

  "딕."

  "데미안에게 말해줘도 돼? 조이의 스타일리스트가 너라고."

  "조용히 시킬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오케이, 그럼 난 데미안 입막으러 이만."

 

  생긋 웃어보인 딕은 파란 파자마 차림으로 계단을 내려가다말고 다시 카산드라를 불러 세웠다. 그는 카산드라의 어깨 위에 축 늘어져 코를 골고있는 제이슨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다음번 조카는 날 쏙 빼닮은 남자아이였음 좋겠는데."

 

  언제나처럼 덤덤한 표정이던 카산드라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녀가 웃을 땐 꼭 저택 안으로 해가 비쳐들어. 딕은 제이슨과 카산드라가 들어가는 방문 사이로 커다랗게 걸린 웨딩사진을 보며 웃다 기지개를 켜며 돌아섰다. 아래층 홀에서 팀과 데미안이 조이를 서로 안고있겠다며 싸우는걸 지켜보는 그의 머리 위로 햇볕이 내려앉는다.

 

 

END

 

 

※ 큰오빠 딕 그레이슨이 주인공같은 기분이 든다면 그건 기분탓이에요. 한번도 출연하지 않은 브루스...캐붕과 막나감...19금......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