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캐스] When I Was Your Man
※ Bruno Mars의 <When I Was Your Man>을 들으며 썼습니다. 본 게시글의 무단 수정, 복제 및 공유를 금지합니다. 글의 저작권은 작성자인 제게 있습니다. 적발시 법적 처벌. ※
When I Was Your Man
제이슨 토드 X 카산드라 케인
-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야?
- 왜. 뭐. 대답이나 해줘. 맛있지?
- ...응. 좋아. 내 취향이야.
퍼석거리는 얇은 이불에 감겨있던 제이슨은 따가운 햇볕에 미간을 찌푸렸다. 정오쯤 됐겠군, 하며 몸을 일으켠 그는 등을 굽으며 깊은 한숨을 뱉었다.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깨어나자마자 까맣게 잊어버렸지만, 꿈 속에서 나눈 대화만은 고장난 카세트 플레이어가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구간반복만을 하듯 계속해서 되풀이됐다. 그도 그럴듯이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꿈 속 대화는 제이슨의 무의식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카산드라를 마주하고, 품에 안고, 웃으며 나눈 것이 꿈결에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깨어나면 사라지고 없을 꿈과는 달리 그의 가슴 속에서 영원할 터였다.
"젠장할..."
베개 맡에 던져두었던 리모콘을 찾아 푸른색 버튼을 누른 제이슨은 머리를 감싸쥐며 다시 몸을 뉘였다. 암막 커튼이 내려오고, 넓은 방 안이 고담의 밤하늘처럼 어두워졌다. 제이슨은 끙끙거리며 바닥으로 손을 뻗었고, 상처가 굳어 군데군데 피딱지가 앉은 손에는 플라스틱 병 하나가 닿았다.
[ 두통약. ]
병 겉면에 붙어있는 작은 종이를 엄지손가락으로 쓰다듬던 제이슨은 나이트 스탠드를 켜고, 엎드린 채로 병을 바라보았다. 카산드라는 단 한번도 술을 그만 마시라거나, 담배를 끊을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약을 두고 가거나, 냉장고에 건강식을 채워두는 방식으로 제이슨의 건강을 챙겼다. H,E,A,D,A,C...나지막이 글자를 읊조리던 제이슨은 병을 집어던졌다.
- 비밀이라 몰랐을 거야.
- ...
- 나한테는 이런거 하나도 필요없어.
- 알고있어. 여러가지 이유로 네게는 필요없는 것들이란거.
- 그래? 그치만 내 비밀은 그게 아냐.
- ...그럼?
- 만병통치약을 구했거든. 아-무것도 필요없어, 그걸 제외하고는.
- ...
- 크큭...알았어. 입 다물게. 아직 내 고백에 익숙해지지 않은거야, 캐스?
- ...
- ...그거 그만 내려놔, 캐스. 미안해. 미안하다고! 입 다문다고 했잖아, 제길!
작은 알약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소리에 다시 머리를 싸맨 제이슨은 눈을 감아버렸다. 어떤 어둠도 그의 머릿속마저 어둡게 만들지는 못했다. 제발 멈춰, 이 썩은 대갈통아! 이를 딱딱 부딪히며 카산드라의 목소리를 지우려던 제이슨은 거짓말처럼 가라앉은 두통에 눈을 떴다. 그를 괴롭히던 카산드라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않았다.
"..."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제이슨은 곧 실소를 터트렸다. 그리고는 한참을 웃어제끼다 그마저도 뚝, 멈췄다. 누군가 전원을 꺼버린 로봇같이. 곧 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씨발...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그의 어깨 위로 희미한 온기가 닿는다.
"...캐스."
맞아. 나 또 이러고 있어. 널 열심히 미워하고, 내 안에서 죽이고, 또 밀어내고 있어. 그런데 널 다시 불러내는 것도 나지. 지긋지긋한 두통이 머리를 박살낼 듯 두드려도, 네 목소리를, 네 흔적을 다시금 꺼내들고 어린 애처럼 울어버려. 지금은...? 우는 날 네가 달래주려고 하고있네. 내 어깨를 토닥여주는 이 작고 여린 손은 언제 봤더라...그래. 언젠가 내 실수로 한 아이가 죽었던 날이었는데...
- 네 탓이 아냐.
- ...
- 나였어도 살리지 못했을 거야.
나쁜 계집애...가져갈거면 다 가져갔어야지. 네 칫솔, 네 옷가지, 네 책...네가 입었던 웨딩드레스까지 가져갔으면 네 반짝거리는 눈동자도, 네 달콤한 체향도, 네 수줍은 미소도, 너의 부드러운 목소리도 모조리 다 내게서 거둬갔어야지! 버리면 그만인 것들 챙겨가지말고, 날 죽이고 갔어야지...네게 가장 소중했던 내 목숨을 가져갔어야 했어, 넌......
"캐스."
응, 제이.
"나 좀...안아줘."
응. 제이.
천천히 옆으로 몸을 뉘인 제이슨은 품 안으로 파고드는 카산드라의 환영을 향해 웃어보이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다시 찾아온 두통에 있는대로 인상을 쓰면서도, 입꼬리만은 지치지 않고 미소를 만들어냈다.
***
"...증상은?"
"여전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군."
"..."
"가서 쉬어. 상태 좋아지면 바로 부를게."
"내가 있을게, 딕."
모니터를 응시하며 말하던 딕은 자신이 살펴보겠다는 카산드라의 말에 그녀의 수척해진 얼굴을 돌아보고는 한숨을 푹, 쉬며 일지를 챙겨들었다. [ 돼지우리같은 안전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훌륭한 데미의 세트장과 그 안에서 열연 중인 토드 놈. ] 그의 상태를 기록하는 일지의 겉장에 데미안이 낙서해둔 것이었다. 제이슨의 상태는 웹과 하드에 기록되는 중이라 일지는 데미안의 낙서노트나 다름없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치우진 않았다. 데미안이 하루에 몇번이나 제이슨의 상태를 체크하는지 확인하며 뿌듯해하는 것이 딕의 작은 즐거움임을 모두가 알기 때문에.
"브루스가 방법을 찾고있으니 곧 나아질거야."
"..."
"대체 어떤 악마가 저런 흑마법을 사용한 건지 아주 궁금한걸."
딕이 나가고, 감시 모니터 앞에 혼자 남은 카산드라는 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며칠 전, 비틀거리며 배트카 위로 쓰러지던 제이슨의 모습이, 투명한 유리 너머에 잠들어있는 제이슨의 모습 위로 겹쳤다. 제이슨은 카산드라의 품에 안겨있으면서도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녀의 손을 잡고있으면서 손을 잡아달라 울부짖었다. 폭식에 이은 거식증과 조울증, 두통과 복통을 호소하며 '떠난 카산드라'를 찾는 제이슨을 감금하기를 제안한 건 카산드라였다.
- 난 찬성. 망할 토드 놈 수발 드는 것도 지친다고.
- 그를 가둬놓아도 수발 들어야하는건 마찬가지야, 데미.
- 적어도 뛰쳐나가진 못할 거 아냐! 토드 놈, 맨날 누나 찾아대며 미친 놈처럼 고담을 활보하는 걸 잡아오느라 죽겠다고!
- 뭐, 카산드라가 그러길 원한다면야...
맞는 말이었다. 제이슨이 저택 밖으로 뛰어나가 돌아다니며 일으킨 몇몇 소동에 언론은 브루스를 주시하기 시작했고, 그건 별로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이목을 끄는 건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 없었다. 로빈들에게도, 카산드라에게도...그리고 제이슨에게도. 어떤 이가 왜 그를 저런 상태로 만들었는진 몰라도, 그 행동이 확실한 효과를 거두고있다는걸 알게되면 또 어떤 짓을 벌일지 몰랐다. 그녀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카산드라를 향해 누워있던 제이슨의 눈이 뜨였다.
"...!"
벌떡 일어나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그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카산드라는 이어지는 제이슨의 행동에 안도인지 뭔지 모를 감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제이슨에게는 그저 벽과, 벽에 기대 세워진 3단 서랍장만이 보일 터였다. 가끔 잊는다. 그녀에겐 유리 한 장이지만, 제이슨에게는 몇년의 시간이 흘러있는 상태라는 것을. 그녀에겐 자신과 제이슨 사이를 가로막은 것이 유리 한 장뿐이지만, 제이슨에게는 부수고 나갈 의지마저 허락하지않는 단단한 벽이 있다는 것을......첫번째 서랍을 열어, 언젠가 카산드라가 그에게 써준 편지를 꺼낸 제이슨은 그것을 품에 소중히 안고 벽에 등을 기댔다.
"...제이슨."
카산드라의 등도 유리에 닿았다. 몸을 웅크려 모은 무릎을 끌어안은 카산드라의 귓가로, 스피커를 통해 제이슨의 목소리가 울렸다.
- ...캐스. 보고싶어.
나도.
- ...돌아와줘, 제발...
...너도. 제이슨.
END
※ 바로 전에 썼던 Breathe Again 이전의 시간을 적고싶었는데, 두 사람이 헤어지는걸 또 쓸 자신이 없어서 약간 방향을 틀었어요. 제가 썼지만 지루하네요^.ㅠ 제이캐스가 사랑을 더 공고히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악마(저)의 빌런빔(aka 흑마법) 이야기입니다(아님). ※